[칼럼] 도밍고 컴퍼니(15화) – 공든 탑이 무너지랴 | 바닥 짚고 일어서기

7월이다.

내 이름 석자만으로 세상에 나온지 만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도밍고뉴스로 사업화를 진행하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성장하였을까?

 

6개월간 거절당하기.

 

지난 6개월간 나는 만족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데일리 TOP10 을 뽑아 푸시로 발송하는 안드로이드 앱을 만든것을 제외하곤 결과를 냈던 것들은 모조리 실패였다. 5, 6 월에 넣었던 정부지원사업 3개는 모두 서류탈락하였다.

 

사실 프리랜서 기간을 두 달 가졌기에 재정적으론 1월보다 좀 더 나아졌던 것이 맞다. 하지만, 몇개월치의 자금이 있는데도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아마 월급을 50번 연속으로 받았던 습성이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월세와 학자금 등 고정비도 무시할 수 없고…

물론 한편으로는 내가 10년, 20년 월급을 받다가 나왔더라면 그 고통이 얼마나 더 컸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 상황보다는 지금이 더 낫겠지.

 

도전하겠다고 회사를 나온 내가 왜이렇게 고통받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기억이 닿는 6년간 이토록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차라리 몸이라도 아팠으면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여유와 웃음을 잃어갔고 늘 깊은 인상과 어두운 안색만 남게 되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그건 이래서 안돼’ 그래, 나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지지… 마라.

 

내 기억이 닿는 6년간이라 함은 대학교 4학년부터 지금까지를 의미한다. 나는 대학교4학년 부터 내 꿈을 위한 실천을 시작했고, 늘 작은 성과들을 받아보았다. 작은 조직을 만들기도 했고, 사내에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내 경험 중 성공적인 사례들을 모아 발표를 하기도 했고, 후배들에게는 선배로써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성과들로부터 자존감을 지켜나갔고, 이 방법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탑을 공들여 쌓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주기적으로 응급실을 다녀왔고, 그럴때마다 나는 길게는 한달여간을 본업만 해야 했다. 신체적 아픔 외에도 가끔 찾아오는 번아웃 시기에도 역시 본업 외에 모든 것을 놓아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기는 늘 퇴근시간과 주말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더 해내곤 했다. 그래야만 남들과 다른 성과를 받아볼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내 탑을 단디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6개월간 나는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했다. 큐레이션을 직접 하려니 스스로의 전문성이 부족하여 진행할 수 없었다. 기술적으로 풀자니 그 역시 역량이 부족했다. 재정은 당연히 부족했고, 나를 믿고 함께할 팀도 없었다. 개발만 하다가 문서작업을 하려니 신입이 된 기분이었고, 이 모든 상황의 선택과 결과를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래, 기대고 싶었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기대어보려 애썼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이것 저것 잡았다. 헐랭, 죄다 지푸라기더라. 좀 더 튼튼한 뿌리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드러난 ‘착한 아이 증후군’

가족에게는 걱정을 끼칠까 힘들다 말하지 못했다. 멘토와 친구들에게는 내가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늘 잘하는 모습만 보이려 애썼고,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이려니 두려웠다. 나는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잘 웃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바닥의 바닥으로.

 

결국 나는 6개월이 되는 시점에 잠시 모든것을 놓기로 결심했다.

내가 찾지 않으니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극심한 외로움. 하지만, 차라리 혼자 있을 때가 더 편했다. 하루에 기대감이 사라지자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동안 쌓여온 감정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그 화살은 가족과 멘토, 그리고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꽂혔다. 더이상 나는 ‘착한 아이’ 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지키던 그것들을 놓았다. 난 더이상 착한아이도 아니고, 믿을 수 있는 직원도 아니며, 늘 잘해온 조직의 팀장도 아니고, 꿈을 향하는 멋진 사람도 아니었다.

버리고 버렸다. 다 버리고 버렸다.

근데… 다 버렸는데. 나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바닥 짚고 일어서기.

 

내가 바닥에 누워있을 때 내게 처음으로 위안을 준 사람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매주 1회 30분간 진행하는 화상 영어수업의 캐나다 선생님이 내게 위로를 했다.

단어만 더덕더덕 붙여서 내 힘듦을 표현했고, 영어 선생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만 사용하여 나를 위로했다.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음에도 나는 굉장히 큰 위안을 받았고, 아무것도 없는 나를 한번 바라보게 되었다.

 

그간 내가 쌓아온 탑이라 여겼던 것들은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도 원치 않았는데, 그저 내가 지레 겁먹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착할 필요가 없는데 착해야 한다 생각했던 일들. 나를 다 보이면 안될 것 같아 숨겼었던 일들.

쌓이고 쌓인 불만을 엉뚱한데 터뜨렸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생각을 접어 보았다. 단기간내에 꼭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버렸다.

 

내 사람들은 내가 감추던 모습을 보고도 떠나지 않았다. 5일 뒤 다시 쳐다본 사업은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손가락질 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내게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며 다독였다. 두 손에 꽉 쥐고 있던 것들을 버리고 나니 다시 주워담을 것들이 보였다.

 

바닥은. 생각보다. 차지 않았다.

 

특이점이 찾아오다.

 

이불 속에서 나와 생각해봤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왜 잃었는가? 당당하던 모습을 왜 보일 수 없는가? 왜 나는 그동안 쌓은 능력을 보일 수 없는가?

동기를 부여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부족한 부분을 매우고, 필요에 의해 배우고.

 

나는 철저히 계획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 계획은 내가 스스로 세우고, 이게 어긋나는 시기가 오면 나는 계획을 다시 세운다.

계획은 내가 무언가 느끼고, 깨달았을 때 주로 세우게 되는데, 나는 이를 ‘특이점’ 이라 말한다. 해야 할 말을 한다거나, 정확한 시점에 행동을 하는 등. 나는 기회를 포착하는데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특이점을 찾아내 기회를 만드는데 능했고, 이는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아주 유용한 능력치였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스스로 ‘특이점’ 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팀으로 움직였지만, 그동안은 팀이 아니었다.

나는 늘 기회를 찾아내 극대화 하였고, 주변엔 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기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기회를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지.

 

스스로의 문제점을 확인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특이점이 찾아왔다.

프라이머 엔턴십 10기 1차 멘토추천으로 ‘도밍고뉴스’ 가 선택되었다.

 

그간 여러 교육을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알게 된 여러 사람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계속해서 도밍고뉴스를 발전시켜갔다.

프라이머에서 도밍고뉴스로 서류통과를 한 것이다. 지난 토요일 1차 발표를 진행했고, 미팅이 잡혔다.

 

꽤나 깊은 바닥이었지만, 한 번 경험한 바닥은 두려움이 덜한 법이지.

이 깊은 구더기를 오르려면 얼마나 오래걸릴진 모르겠다만, 다시 기어올라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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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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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감성개발자 도밍고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 핫한 트랜드를 간단히 요약하고 코멘트를 달아 여러분들께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사이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