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밍고컴퍼니(25화) – 만약 내가 틀렸다면?

지난 5월부터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지난해 자금부족이 초기 스타트업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인지할 수 있었고, 비즈니스를 만드는 일과 자금을 확보하는 일을 당분간 투트랙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5월부터 새로운 환경에서 자금을 확보하고 있었다.

 

내가 프리랜서 개발자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도밍고컴퍼니’ 를 만들기 위해서다. 장단점이 있지만, 프리랜서 개발자는 프로젝트 내 일을 위한 논쟁 외에는 불필요한 일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가령, 본사 내 조직개편이라던가, 관리자의 위치 변화라던가, 사내 임금체계 변경이라던가… 하는 ‘일’ 외적인 것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프리랜서 개발자로써의 시간은 내게 ‘자금확보’ 의 의미가 가장 컸고,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일’ 을 마친 뒤 내 비즈니스를 만드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내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난 7월 나는 한 달간 주 7일제로 출근했다.

 

일 잘하는 개발자라고 생각했다.

 

6년차 개발자. 지금까지 20개에 가까운 크고 작은 앱을 만들며, 그 중 절반을 작은 파트의 담당자로 책임을 지며 일해왔다.

자신 있었다. 적어도 내 한 몸, 밥 벌어먹을 자신은.

자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맡은 파트를 책임질 자신은.

 

나는 주어진 업무를 명확히 파악하고, 내 능력에 따른 해당 업무의 일정을 산정하고,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능력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20개의 앱 프로젝트에서는 그랬다.

나는 단 한차례도 일정을 넘기거나 프로젝트에 차질을 준 적이 없었다. 내 업무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맡겼다. 나는 관리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켰고, 자연스레 단단히 자리 잡았다.

퇴사 전 그러니까 4년차부터는 내가 할 일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동료들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관리자들의 성향을 파악해 그들의 요구와 나의 스타일의 접점을 찾았다. 이바닥에서는 ‘일정’ 과 ‘고객의 요구’ 보다 더 중요한건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준다면, 다른 부차적인 것들은 협상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렇게 내 주위를 내 스타일로 만들어두었다.

 

지루했다. 재미없었다. 발전이 없는 것 같았다.

온갖 희망찬 말들로 창업을 한 이유를 나열했지만, 시대의 흐름인양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래 나는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나보다. 좀 더 큰 일을 하고, 좀 더 큰 보상을 받고, 좀 더 큰 인정을 받는… 그런 일 말이다.

이제 여기서 일을 잘 하게 되었으니, 너 멋진 일들을 하고 싶었나보다.

그래, 나는 스스로가 일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잘난게 아니더라고.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다.

역시나 내 계획은 이랬다. 최대한 빠르게 업무를 마치고 내 비즈니스를 만든다. 이 곳은 ‘돈’ 을 벌기 위해 내 시간을 파는 곳이다. 어차피 똑같은 일, 최대한 빠르게 쳐내고 내 일을 하자.

그리고 보름 뒤 내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동료, 새로운 관리자. 그리고… 새로운 업무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해온 것처럼 하면 어디서든 문제 없을거라 생각했고, 내 완벽한 착각이었다.

 

새로운 환경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도대체 누가 힘을 가진 책임자고, 누가 일을 뒤집고, 일정을 조율하는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새로운 동료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도대체 이들이 어떤 능력치를 가졌는지, 내게 어떤 호의가 있는지. 누가 정치를 하는건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파악이 불가능했다.

새로운 관리자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이슈에 대해 조사를 한 뒤 말했지만,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동안의 신뢰가 없었기에 그들 또한 내가 어떤사람인지 몰랐다.

그리고 새로운 업무. 도대체가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마치 다시 신입이 된 듯, 앞으로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름의 예측과 나름의 믿음. 나름의 선택과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 업무를 진행했고, 내 커리어 최초로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짜증이 났다. 아니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저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것이며, 도대체 왜 저들은 내 스타일과 다른 것이고, 도대체 왜 나는 이 일을 빠르게 못하는 것인지.

아침 9시에 출근해 10시에 퇴근하는 것을 넘어, 12시, 2시, 새벽 4시까지. 프로젝트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지고, 구성원들의 언성은 높아져갔다. 주름은 깊어지고, 짜증은 늘어갔다. 개발은 쥐어짠다고 되는게 아니다. 하지만, 쥐어 짜야만 했다. 틈만 나면 엎어져 쪽잠을 잤고, 이 일 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앉았는지 기억도 안나고, 그저 눈앞의 내 자존심이 걸린 이 일정을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어찌어찌 일을 마쳤고, 한 달간의 쥐어 짜기를 통해 우리는 결국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마쳤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은 물론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내 문제도 있었다. 나는 좀 더 이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 했어야만 했다. 난 이 지경이 될 줄 알았거든.

내가 제기했던 문제들은 고스란히 드러났고, 내가 열어둔 가능성들은 맞아 떨어졌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 문제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게 다 내 일이 되었다.

 

짜증이 났다. 아, 이 사람이 있었으면 이걸 해줬을텐데. 아, 이 사람이 있었으면 저걸 했을텐데. 수면부족과 과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땐 그저 짜증과 화가 날 뿐이었다.

일정이 마무리되고, 다음 일정을 시작하기 전 잠시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나는 그동안의 시간들을 복기했고, 이제서야 오만했던 내 부끄러운 모습들이 떠올랐다.

 

내가 일정을 준수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함께 일했기 때문이다.

내 스타일로 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스타일에 맞춰주었고, 그들의 스타일이 나와 맞는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을 잘 했던 것은,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묵묵히 내가 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큰소리치며 내 이야기를 주장했던 모습들이 부끄러웠다. 만약 내가 기술적으로 훨씬 더 뛰어났더라면 내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내가 그들의 몫까지 다 해치울 수 있었더라면 이토록 부끄럽진 않았겠지.

한편으론 지금 시점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일을 모조리 해치웠더라면 더욱 기고만장해서 남의 말을 절대 듣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겠지.

 

일정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도밍고컴퍼니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한동안 회의는 커녕 팀원들과 연락도 하지 못했고, 그저 눈 앞의 일을 처리 할 뿐이었다.

프로젝트는 이제 다음 오픈 준비를 시작했고, 그동안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변화가 생겼다. 인력 조정이 생겼고, 업무 변화와 책임자 변화 등이 생겼다. 내 파트에도 변화가 있었고, 3개월 전과는 다르게 필요한 것들을 명확히 전달하고 우려가 되는 것들을 분명히 짚었다.

보름간 다음 일정을 준비하며 컨디션을 회복했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하는 동시에 도밍고컴퍼니도 재정비한다.

 

다시 처음으로.

 

1년 반.

한 VC 는 파트타임으로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풀타임으로 밤낮없이 제품 개발에 전념하는 스타트업들에 비하면 당신들은 토이프로젝트라고.

 

나는 1년 반 동안 토이프로젝트를 하고 있는걸까?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꼭 풀타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스타트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물론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스타트업이 아닌가? 환경을 만드는 것 또한 대표자의 역량 아닌가?

흔히 사람, 돈, 아이디어 세 가지가 있어야 스타트업이라고 하는데, 이 중 하나를 충족시키는 것도 꽤나 어렵다. 돈은 정말 빠르게 사라지고,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아이디어는 이 중 가장 값싼게 아니던가?

 

최근 3개월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 새로운 사람과 업무에 적응하는 것을 경험했다.

건축을 하는 인부 두 명에게 당신이 무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사람은 벽돌을 쌓고 있다고 했고, 한 사람은 성당을 짓는다라고 했다. 지금은 토이프로젝트라 할 지언정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퀄리티를 보장하는지, 어떤 프로 의식을 지니는지가 추후 이 프로젝트를 토이프로젝트로 만들지 새로운 비즈니스로 만들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몇 년간 달릴 자금도, 아이디어도, 사람도 없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조직과 리더상. 비전과 팀워크. 그리고 나의 이 머릿속 생각들을 현실화 하는데 살아있음을 느낀다. 때문에 나는 지금처럼 때론 한 사람의 개발자로, 때론 한 비즈니스의 대표자로써 조금씩 다가갈 생각이다.

 

그동안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더 깊어지기도 했다. 나는 좀 더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때, 보다 나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리고 결국 이뤄냈을 때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온몸의 털이 쭈삣 서는 듯한 스릴. 모두가 나를 쳐다볼 때의 두근거림. 결국 해냈을 때의 그 느낌.

내가 만든 비즈니스에서 이러한 쾌감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 뒤의 열린 새로운 세계는 과연 어떤 흥분감을 가져올지. 극한의 환경 속에서 결국은 결과를 내는 스스로를 보며, 입사 초 ‘프로페셔널이 되고 싶다’ 하는 내 다짐이 조금은 이뤄진 것 같아 꽤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와르르 무너질뻔 했던 프로젝트에서 뜻밖의 많은 확신을 얻으며, 도밍고컴퍼니를 새로이 정비하고 있다.

도밍고컴퍼니를 시작한지 1년 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1인 기업 도밍고컴퍼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26개의 칼럼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지만, 이 칼럼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은 당연하다.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초기 멤버를 팀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결국은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다름을 확인하였고, 아쉽지만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사실 좀 궁금하다. 도대체 초기부터 성공에 이르기까지 잡스와 워즈니악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마윈과 마윈의 아파트 멤버들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수많은 변수들을 이겨내며 결국엔 한획을 그은 그들이 참 대단해보이는 시간이다.

 

아직도 도밍고를 응원하고 돕는 사람들은 많지만, 가장 긴 시간을 함께했던 동료를 떠나보내는 것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너무도 많은 감정이 떠올라 글로 적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도밍고컴퍼니를 만들어가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내가 어디까지 왔었는지. 아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음… 어디로 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토이 프로젝트로, 누군가에겐 자기개발로, 혹 누군가는 뻘짓으로 볼 내 행보에 단단했던 동료를 떠나보내며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이 슬픔을 짧게 적어둔다.

 

도밍고컴퍼니는 계속된다.

도밍고를 응원해주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Share:
domingo

domingo

글쓰는 감성개발자 도밍고입니다. IT, 책, 축구, 커뮤니티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 핫한 트랜드를 간단히 요약하고 코멘트를 달아 여러분들께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인사이트를 위하여!